국민의힘 대선 주자로 김문수 후보가 선출됐지만,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맞대결을 펼칠 범보수 진영의 '단일 후보'인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한덕수 전 총리 등 당 밖 인사들과의 단일화 문턱을 한 번 더 넘어야 할 거란 관측인데,
앞서 대선판을 흔들었던 단일화의 역사, 손효정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기자]
결정적 승기를 쥐었던 단일화의 대표 성공 사례는 지난 1997년 15대 대선 당시의 DJP 연합입니다.
김대중과 김종필, '호남'과 '충청'을 대표하는 두 정치인이 손잡으며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1.53%p 차로 꺾었습니다.
협상은 1년 넘게 이어졌지만, 단일화는 별도 경선 없이 두 총재의 '담판'으로 결정됐습니다.
DJ는 단일 후보가 되고, JP는 공동정권의 국무총리와 조각권을 보장받으며 성사된 연정이 헌정 사상 첫 정권교체로 이어졌습니다.
[김대중 / 전직 대통령 (1997년 당선 당시) : 건국 이래 처음으로 여야 정권 교체가 이뤄졌습니다.]
'반이재명 빅텐트론'을 띄운 국민의힘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사례는 2002년 16대 대선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입니다.
진보와 보수 진영의 연대로, 이길 가능성이 적은 선수, 이른바 '언더독' 노무현 후보가 1강이었던 이회창 후보를 누르는 이변이 연출됐습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 지지율이 우세한 지금의 대선 구도와 유사하단 평가인데, 단일화 방식 역시 참고할 만합니다.
'톱-다운' 담판이었던 DJP 연합과 달리, 후보 양측이 대표단을 꾸려 협상에 나섰고, 국민 참여경선을 도입해 당원투표 50%, 일반 국민 여론조사 50%로 경선을 치렀습니다.
[노무현 / 당시 대통령 후보(2002년 단일화 타결 당시) : 우리도 최선을 다하겠지만 이미 우리 운명은 우리 손을 떠나서 국민들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선거 전날 정몽준 후보가 지지를 철회했지만, 오히려 지지층이 결집했고, 단일화는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견인한 승부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0.73%p 차이 신승', 직전 20대 대선에서도 윤석열-안철수 단일화가 중대 분수령이었습니다.
'룰'을 둘러싼 신경전이 있었지만 결국 안철수 후보가 전격 사퇴했고, 이재명-심상정 후보로 갈라진 진보진영을 상대로 윤석열 당시 후보가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안철수 / 당시 국민의당 대선 후보(2022년) : 저 안철수는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습니다.]
[윤석열 / 당... (중략)
YTN 손효정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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