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이후...
계속되는 전쟁 속에 부모를 잃은 전쟁 고아들은 점차 늘어났습니다.
매일 아침, 폐허가 된 서울 시내를 돌며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데려와 보살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전쟁 고아의 아버지', 러셀 블레이즈델 미군 중령과 제주에서 보육원을 운영한 딘 헤스 미군 중령입니다.
서울 시내에 작은 고아원을 차린 블레이즈델 중령.
매일 아침 서울 시내를 돌며 고아들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덕분에 1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혹독한 추위와 부모를 잃은 절망 속에서 목숨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1.4 후퇴 때였습니다.
중공군의 기세가 거세지면서 그대로 있으면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유엔군이 아이들을 남겨두고 후퇴할 것을 지시했지만 블레이즈델 중령은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합니다.
아이들을 제주로 탈출시킬 계획을 세웁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동수단이었는데요.
"아이들을 이송시킬 비행기를 편성해달라"
단 1대의 항공기도 아쉬운 전쟁 상황, 이 간청은 거절당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눈물로 호소하는 블레이즈델 중령의 부탁이 이어지자.
마침내 단 하루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수송기 15대를 얻어냈습니다.
어렵게 구한 트럭들로 1000여 명의 아이들을 김포 비행장까지 데려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정신없이 아이들을 안고 수송기에 옮겨 태워 제주도로 무사히 이송했습니다.
당시 그들의 품 안에 있었던 전쟁 고아들은 그 품이 얼마나 따뜻했을까요?
블레이즈델 중령은 상관 명령 불복종으로 감찰 조사까지 받게 됩니다.
이때 이 중령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
그 뒤에는 딘 헤스 중령이 제주도에서 10개월 간 보육원을 운영하며 전쟁 고아들을 돌봤습니다.
블레이즈델 중령은 2007년 헤스 중령은 2015년에 세상을 떠났는데요.
2012년 블레이즈델 중령의 아들과 1000여 명의 고아 중 한 명이었던 곽해오 씨가 만났습니다.
블레이즈델 중령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어떻게 살았겠냐는 곽해오 씨와 아버지가 구한 사람이라면 형제나 다름없다며 얼싸안은 두 사람의 모습 뭉클하지요.
명령에 불복종해 가면서까지 아이들을 구한 블레이즈델 중령.
그리고 제주에서 그 어려운 시절, 아이들을 돌봐준 딘 헤스 중령.
인간애가 없...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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